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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여성주의 비판
황 정 규 (「사회주의강령을 토론하자!」 편집위원회 편집부장)
1960년대 이후 여성해방운동이 대중적으로 성장하면서, 사회주의, 맑스주의와 여성주의를 서로 결합시키려는 시도 역시 등장하게 되었다. 소위 “사회주의 여성주의”로 규정되는 이러한 시도들은 대개가 두 가지 방식에 의해서였다. 우선 맑스주의가 여성억압이라는 특수한 억압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한계를 지니기 때문에, 맑스주의는 생산양식의 발전, 특히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에만 제한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두 번째로 맑스주의는 여성억압을 설명하기 위해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여성억압을 설명해줄 수 있는 여성주의가 맑스주의와 결합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맑스주의는 여성억압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여성주의의 견해를 받아들여 서로 결합시켜야 한다는 견해는 하이디 하트만에 의해 전형적으로 드러났다. 하트만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맑스주의적 분석은 역사발전의 법칙들, 특히 자본의 법칙에 대해 본질적인 통찰을 제공하지만, 맑스주의의 범주들은 성맹목(sex-blind)적이다. 오직 여성주의 특유의 분석만이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들의 체계적 성격을 드러낸다. 그러나 여성주의의 분석 그 자체로는 불충분하다. 그것은 역사에 맹목하고 충분히 유물론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부족한 맑스주의와 여성주의가 서로를 보완하며 결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1) 그녀는 맑스주의가 성맹목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여성억압을 설명할 수 없다고 보았고, 따라서 여성억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론, 새로운 범주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새로운 범주는 바로 “가부장제”였다.
한편 맑스주의가 여성억압을 설명하는 데 한계를 있으며, 이러한 한계는 맑스주의 자체를 수정, 변형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재생산”이라는 범주를 이용하였다. 이들은 생산과 대비되는 범주로서 재생산을 상정하고는, 생산은 기존의 맑스주의로 설명될 수 있는 영역이며, 재생산은 여성억압이 발생하는 맑스주의가 설명하지 못한 영역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설명은 심지어 엥겔스가 쓴 「가족, 사적소유, 국가의 기원」의 서문에 의해 정당화 되는 것처럼 주장되었다.2)
이러한 시도는 모두 이원론이라는 특징을 지니는 것으로, 이에 따르면 현실은 계급문제와 관련된 생산양식 / 생산의 영역과 여성억압과 관련된 가부장제 / 재생산영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맑스주의는 계급문제, 여성주의는 여성문제를 따로따로 설명하는 것으로, 계급문제와 여성문제를 모두 설명하기 위해서는 맑스주의, 여성주의의 결합이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여성주의는 여성억압의 독자성을 입증하려는 의식의 과잉만을 보여준 채, 여성억압의 원인뿐 아니라 여성억압과 계급억압 사이의 관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맑스주의는 계급사회 분석, 특히 자본주의 계급분석에만 유용한 협소한 것으로 재단하였다. 그 결과 계급문제와 여성문제 모두 제대로 설명하는 데 실패하였던 것이다. 전체글 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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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위기의 주범인 자본주의
황 정 규 (「사회주의강령을 토론하자!」 편집위원회 편집부장)
「사회주의강령을 토론하자!」 3호에서는 생태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이는 생태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는 상황에 비해 이 생태문제를 사회주의자들이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토론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제 3호의 글에서는 생태문제에 대한 맑스주의적 관점이 발전해오는 방식으로 글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생태문제에 대한 맑스주의적 관점이 발전해오는 과정을 평가하면서, 소위 생태사회주의, 생태주의적 맑스주의 등이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생태문제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였으며, 더구나 이들은 맑스주의가 생태문제를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사회주의를 포기하는 결과를 낳았음을 강조하였다. 또한 사회주의자가 생태문제에 대해서 올바른 관점을 취하기 위해서는 계급문제, 생태문제 등을 별개로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총체성 속에서 생태문제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이 글은 현재의 생태문제는 인간과 자연간의 물질대사 관계에 균열이 발생하여 일어난 것으로, 이 물질대사 관계는 역사적으로 인간사회가 취해왔던 생산관계에 따라 특유의 형태가 존재하는데,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공존을 파괴하는 물질대사 관계를 낳았음을 강조하였다. 제 3호의 글은 이 물질대사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자본주의는 그 본질적 속성 상 이윤(잉여가치)의 추구를 목적으로 하며, 이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은 생산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이윤 획득 과정은 그 한계가 없는 무제한적 과정이다. 또한 자본주의는 이윤의 획득을 위해, 생산규모를 항구적으로 확대 시키려는 경향을 지닌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과의 물질대사 관계도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 이윤을 위해 자연에 대한 약탈을 가속화하는 과정으로 갈 수밖에 없다.”(황정규, “생태문제에 대한 맑스주의적 관점”, 「사회주의강령을 토론하자!」 3호)
간단히 말해 현재 인류가 직면한 생태위기는 인간활동 자체의 결과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 3호의 글은 맑스주의적 생태론을 전체적으로 제시하려고 하는 목적 때문에, 자본주의가 어떻게 생태문제를 야기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못하였다. 이 글은 바로 제 3호의 글의 주제 중 하나였던, 자본주의가 생태문제를 낳는 주범임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전체글 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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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억압의 근원과 여성해방에 대한 사회주의적 관점
이 상 진 (노동해방실천연대(준) 회원)
지난 「사회주의강령을 토론하자!」 제 4호, “여성문제, 계급문제에 대한 이원론적 접근 비판”에서는 사회주의 여성주의에 대한 비판과 함께, 여성억압의 근원과 여성문제를 이해하는 사회주의 운동의 관점에 대한 명확한 정식화가 필요함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글의 마지막에서 다음과 같이 정식화의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최근 성별분업과 계급의 등장이 여성억압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연구성과들이 제시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여성문제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이 제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맑스주의 방법론인 역사유물론은 인간사회의 총체적 구조 속에서 여성억압에 대해 설명하는 적절한 이론틀을 제공해 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실마리를 바탕으로, 여성억압의 근원을 밝히고 여성해방에 대해 사회주의 운동이 어떠한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여성해방에 대한 사회주의의 전망을 제시할 것이다.
이에 앞서 먼저 왜 역사유물론이 여성억압의 근원을 과학적으로 밝혀 줄 이론인지 간단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이는 사회주의 여성주의가 역사유물론을 왜곡하면서, 여성억압의 근원을 밝히는데 있어 역사유물론을 정확히 적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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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제, 계급문제에 대한 이원론적 접근 비판
이 상 진 (노동해방실천연대(준) 회원)
들어가며
2008년부터 일어난 전세계적인 경제대공황은, 전 세계 민중들에게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실현해야 한다는 대중적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관심 밖으로 내몰렸던 자본론이 다시 인기를 얻고, 경제공황의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았던 유럽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여론조사가 진행되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도 삶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주장이 대중적으로 제기되고 있는데, 이는 이러한 상황의 반영인 것이다.그런데 자본주의의 위기는 경제시스템 자체의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역사적 생산양식의 하나인 자본주의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인간과 인간들간의 관계들조차 자본주의 방식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인간의 삶 전반을 철저히 파괴하고 위기에 처하게 만들고 있다. 생태문제만 보더라도 자본주의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서는 궁극적 해결전망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대한 극복은 단순히 경제제도의 문제를 넘어 어떠한 사회를 인류가 추구해 나가야 하는지 의문을 던지는 것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실현하려는 대중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운동 자체도 자신을 반드시 혁신, 현대화해야 하는데, ‘(가칭)한국사회주의 노동자당 강령 초안’(이하 강령초안)은 이를 위한 핵심 중의 하나로 현대사회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는 여성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능동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여성문제가 현대사회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은, 현대에 들어 여성문제가 새롭게 나타났다는 뜻은 아니다. 엥겔스의 주장을 보더라도 여성억압은 계급의 등장과 더불어 출현한 것으로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된 것이다. 그러나 여성억압에 맞선 투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본주의 출현 이후에 본격화되었고, 20세기를 관통하면서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는 뜻에서 그렇다. 현재 한국 사회만 보더라도 여성문제는 다양하게 등장하여 제도적으로 일부 진전이 되기도 하고, 이제 막 문제의식이 싹트거나 벌써 논란거리가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남성 중심의 호주제는 철폐가 되었고, 여성의 정치참여를 높이기 위한 할당제가 도입되기도 하였다. 낙태 허용, 간통죄 폐지 문제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은 노동자로서 착취를 당하는 것과 함께, 같은 남성에 비해서도 차별을 받고 있고, 가정에서는 가사,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이중착취에 고통받고 있다. 여성들은 통계에도 잘 잡히지 않는 가정폭력에 고통받기도 하고, 직장 내에서는 성희롱과 성폭력으로 억압받고 있다. 대부분의 성소수자는 여전히 사회의 따가운 시선과 제도의 장벽으로 인해 억압받고 있다. 전체글 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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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자본주의론의 고질적인 ‘추상적 도식주의’
황 정 규 (「사회주의강령을 토론하자!」 편집위원회 편집부장)
들어가며
「사회주의강령을 토론하자!」 제 2호에 게재된 「맑스주의에서 벗어난 국가자본주의론의 오류」는 토니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론을 주된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제 2호의 글에서 토니 클리프의 이론이 지니는 한계는 다음과 같이 지적되었다.
“우선 토니 클리프는 타락한 노동자국가론에 대해 비판하고 소련사회에 대한 자신의 입론을 세우는 과정에서, 소련사회의 “변질”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구체적으로 역사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가 아니니까 자본주의’라는 추상적 도식으로 대체하였다. 이는 현실을 구체적이고 역사적으로 접근할 것을 요구하는 맑스주의의 방법론에서 이탈한 것이다.
두 번째로 토니 클리프는 ‘사회주의가 아니니까 자본주의’라는, 소련의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추상적 도식을 소련사회에 집요하게 적용하려고 하다 보니, 소련이 자본주의체제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맑스주의에서 벗어난 자본주의관을 가공해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시도는 소련 현실에 대한 왜곡뿐 아니라 맑스주의 이론에 대한 심각한 왜곡을 야기하였다.
마지막으로 토니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론은 실제 중요한 정치적 사안들에서 실천 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였다. 추상적 도식은 현실의 올바른 인식을 가로막기 때문에 현실의 실천 과정에서 다양한 오류와 절충을 피할 수 없었다.” (황정규, 「맑스주의에서 벗어난 국가자본주의론의 오류」)
요컨대 토니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론의 오류와 한계는 현실을 구체적이고 역사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집요하다고할 정도까지 자신의 머리 속에서 만든 추상적 도식으로 현실을 재단하려고 한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태도는 흡사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연상케 한다. 신화 속에서 프로크루스테스는 자신의 영지를 지나가는 나그네를 잡아와 자기 집에 있는 쇠로 만든 침대에 묶었다. 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몸을 늘려 죽였고, 키가 침대보다 크면 침대보다 긴 몸을 잘라 죽였다. 토니 클리프 역시 국가자본주의라는 “침대”에 소련사회라는 몸을 밀어 넣고 이 침대에 맞게 현실을 늘리고 잘라내었을 뿐이다.
제 2호에서 토니 클리프의 이론을 중심으로 국가자본주의론의 문제점을 비판하였던 것은 토니 클리프의 이론이 국가자본주의론이 지니는 문제점을 전형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 2호의 토니 클리프의 이론을 집중적으로 비판하였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주장도 가능할 것이다. 즉 “우리는 소련이 국가자본주의라고 보지만, 토니 클리프 식의 국가자본주의론은 아니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토니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론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해서, 다른 국가자본주의론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1) 다른 국가자본주의론들 역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추상적, 도식적 방식으로 소련사회를 분석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본주의가 아니니까 사회주의’라는 추상적 도식주의로 소련사회를 설명하려는 국가자본주의론은 불가피하게 많은 오류와 한계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추상적 도식주의에서 오는 오류와 한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바로 레스닉과 울프의 국가자본주의론이다. 이 글에서는 이들의 국가자본주의론을 검토해봄으로써, 추상적 도식으로 소련사회를 재단하려는 것이 국가자본주의론에서 나타나는 고질적 문제이고, 이러한 추상적 도식주의가 불가피하게 많은 오류와 한계를 야기한다는 것을 보다 명확하게 알아보도록 하겠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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