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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르주아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의 차이

    2009년 5월 12일 (화요일)에 등록됨 강령토론 4 comments 조회:1,909 인쇄하기 인쇄하기

    성 두 현 (노동해방실천연대(준) 지도위원)

        

    (가칭)한국사회주의노동자당 강령초안해설은 ‘현실사회주의’의 성격을 규정하는 항목에서1) 타락한 노동자국가론을 주장한 트로츠키의 오류가 “생산수단의 법적 소유형태가 생산관계를 구성하는 한 요소일 뿐임에도 생산수단의 법적 소유형태로 생산관계전반을 판단한 데에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오류는 그가 자본주의사회에서나 존재하는 정치와 경제의 상대적 자율성을 소련사회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한 데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2009,「사회주의강령을 토론하자!」창간준비호 68쪽). 이 오류가 트로츠키로 하여금 노동자민주주의가 완전히 변질되어 실종된 소련사회를, 생산수단의 국유화가 잔존한다는 이유로 여전히 노동자국가의 성격을 갖는다고 규정하게 만들었으며, 정치혁명과 사회혁명을 분리하여 고집스럽게 사회혁명 없는 정치혁명을 주장하게 만들었다.

    트로츠키는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 공산주의사회를 형성해가는 데에서 정치와 경제가 갖는 관계를 잘못 인식하여 사회주의, 공산주의사회 형성에서 노동자민주주의, 노동자국가가 수행하는 결정적 역할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의 오류가 발생한 핵심적인 이유는 그가 부르주아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의 근본적 차이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부르주아혁명과 사회주의혁명, 자본주의사회의 형성과 공산주의사회의 형성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는데 그는 이점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였다. 이것이 트로츠키가 오류에 빠진 근원적인 이유이다. 이 글은 이 점을 분명하게 밝혀낼 것이다.

    또한 트로츠키만이 아니라 동시대 사회주의자들이 프랑스혁명의 테르미도르, 보나파르티즘을 러시아 사회주의혁명에 유추하여 적용한 것이 사태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해명하기 보다는 그 인식을 오히려 더 혼란스럽게 한 것 역시 이들이 부르주아혁명과 사회주의혁명 사이의 근본적 차이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부르주아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의 근본적 차이를 분명히 드러내는 것은 사회주의혁명 특유의 실천적 과제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트로츠키의 오류는 실제로 매우 광범위한 사회주의자들이 과거에 공유했고 현재도 공유하는 오류인데 이 글은 이를 명확하게 밝혀내어 앞으로 새로운 사회주의를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동일한 오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2)

     

     

    1. 공산주의적 생산관계, 공산주의사회의 형성, 발전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자본주의사회의 발생, 발전의 근본적인 차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봉건사회의 내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발생하여 봉건사회를 해체해들어가며 부르주아 정치혁명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봉건사회의 해체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전에 박차를 가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부르주아혁명의 가장 급진적인 형태를 보여준 프랑스혁명은 이의 가장 전형적인 예이다. 프랑스 사회에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봉건사회의 태내에서 서서히 발생하고 발전해왔다. 부르주아정치혁명보다 오래 전 18세기 초에 이미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발전하고 있었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발전하면서 구질서와의 모순은 심화되고 구질서가 참을 수 없는 질곡으로 전화될 때 부르주아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 부르주아혁명은 자본주의적 발전에 박차를 가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부르주아혁명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발생하고 발전하고 있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전에 박차를 가할 뿐이라는 점이다.

    이와는 달리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는 자본주의사회 내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에 반대하는 투쟁 속에서 스스로를 지배계급의 지위로 높이고 민주주의를 쟁취하며, 이 정치적 지배를 이용,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실현하여(맑스, 엥겔스, 1848, 「공산당 선언」),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의 기본조건을 확보함으로써 비로소 발생하게 된다. 즉,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는 자본주의의 태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노동자국가를 수립한 후에야, 노동자계급의 의식적 실천에 의해서 비로소 발생하게 된다.3)

    이 점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자본주의사회의 발생, 발전과 공산주의적 생산관계, 공산주의사회의 형성, 발전이 갖는 근본적인 차이이다.

     

    1)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전에서 부르주아국가가 수행하는 역할이 상대적으로 제한성을 갖는 것과 달리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의 형성과 발전에서 노동자국가가 수행하는 역할은 결정적이다.

     

    부르주아혁명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전에 박차를 가하지만 혁명으로 출현한 부르주아국가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전에서 수행하는 역할은 제한적이고 부차적이다. 발전의 주된 동력은 생산관계자체에서 나온다. 이와는 달리 노동자국가는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의 적극적인 형성자, 조성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사회주의혁명에 의한 노동자국가의 수립은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의 출발선이 되고 노동자국가는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전을 추동한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로의 이행에서 노동자국가의 역할이 중대한 것은 이 때문이다.

    사회주의혁명으로 수립되는 노동자국가는 자본가계급과 지주계급을 몰수하여 생산수단을 국유화, 사회화하고 이렇게 국유화된 생산수단을 토대로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시기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노동자계급은 노동자국가라는 수단을 통하여 비록 패배했지만 아직도 강력한 힘을 갖고 존재하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해체하고 이를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로 대체해가며, 소생산자적 생산관계를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로 재편, 발전시켜간다. 공산주의적 생산관계가 스스로의 토대 위에서 발전해가기 전까지 노동자국가는 이행의 중심고리 역할을 하고 계급의 폐지와 함께 그 역할을 다하여 비로소 소멸해가기 시작한다.

     

    2) 자본주의사회에서 나타나는 정치와 경제의 상대적 자율성은, 공산주의사회로의 과도기 사회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전에서 부르주아국가가 중요하되, 부차적인 역할만을 함은 이미 언급하였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전이 자연발생적이라는 데에서 연유할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전이 부르주아국가와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관계를 갖고 진행되기 때문이다. 강령초안해설은 이점을 미주1)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1) 자본주의사회에서와 달리 사회주의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는 직접적으로 통일되어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자본주의사회가 자본주의 이전 사회와 비교하여 갖는 두드러진 특이한 현상 중 하나는 정치와 경제, 국가와 (시민)사회가 실제로 분리된 것이 아닌데도 분리된 형태로 나타나고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가령 봉건사회에서 봉건영주와 농노사이의 관계는 정치적 관계, 경제적 관계가 분리되어 나타나지 않으며, 직접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농노의 봉건영주에 대한 관계는 신분적 예속관계로서, 이 관계없이 봉건적 생산은 존재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정치적 관계, 경제적 관계는 분리되어 나타나지 않으며 국가와 사회는 분리되지 않은 채 직접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이와 달리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정치와 경제, 국가와 (시민)사회는 상대적으로 분리되어 자율성을 갖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정치는 경제와 직접적으로 통일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국가 역시 (시민)사회와 직접적으로 통일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 점은 이전사회와 비교하여 자본주의사회가 갖는 두드러진 차이점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이러한 상대적 자율성이 발생하는 것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관계의 특별한 성격에서 발생한다. 봉건사회에서 농노는 생산조건-주로 토지-의 사실상의 소유자, 점유자이다. 때문에 명목적인 토지소유자인 봉건영주가 농노로부터 잉여노동을 강탈할 수 있기 위해서는 경제외적 강제가 필수적이며, 농노를 토지에 강박하여 토지의 부속물로 만드는 것과 신분적 예속관계가 봉건적 생산을 위해 필수적이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봉건영주는 농노로부터 잉여노동을 강탈할 수 없을 것이다. 봉건사회에서의 농노와 달리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는 생산조건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조건은 자본가들의 소유이며 생산은 자본가들의 지휘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생산물은 자본가들의 소유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음으로써만 자신과 가족의 생존과 재생산을 확보할 수 있다. 그 결과 경제외적 강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필수적인 것이 아니게 되며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는 외관상 ‘계약관계’의 모습을 갖게 되고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거래하는 ‘상품거래관계’의 모습을 갖게 된다.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관계는, 본질상 지배, 종속, 착취피착취관계임에도 외관상으로는 대등한 주체의 계약관계, 상품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로 나타난다.

    이러한 이유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본질상 분리된 것이 아님에도, 정치는 경제와, 국가는 (시민)사회와 분리된 외관형태를 취하며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갖는 것으로 나타난다.”(「사회주의강령을 토론하자!」창간준비호, 2009, 91, 92쪽)

     

    이러한 상대적 자율성 때문에 자본주의사회에서 부르주아국가는 공화제 형태의 국가, 보나파르트적 형태의 국가, 파시즘 형태의 국가, 군사독재 형태의 국가 등으로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지만 이러한 다양한 부르주아국가형태의 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본질적인 변화를 수반하지 않았다.

    정치와 경제의 상대적 자율성이 더욱더 명확하게 나타난 것은 부르주아혁명이 일시적으로 후퇴하여 반동화하고 극단적으로는 왕정복고처럼 봉건적 형태의 국가가 다시 출현하여도 이미 생산력의 발전을 수반하여 진행되던 자본주의적 발전은 이로 인해 저지되거나 과거로 되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점은 이 글의 주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트로츠키도 잘 인식하고 있었다.

     

    “농노제로부터 농민을 해방하고 그들에게 땅을 제공하는 심원한 민주주의 혁명 이후에, 봉건적 반혁명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론 타도된 군주가 다시 권력을 장악하고, 중세의 낡은 관습을 유지하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봉건주의 경제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일단 봉건적 구속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 부르주아적 관계가 자동적으로 성장한다. 그것들[부르주아적 관계]은 외부적 힘에 의해 정지될 수 없다.”(트로츠키, 1935, 「노동자국가, 테르미도르 그리고 보나파르티즘」, IBT 홈페이지에 게재된 한글번역본에서 인용).

     

    그러나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사회로의 이행의 과도기 사회, 광의의 사회주의사회4)에서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존재했던 정치와 경제의 상대적 자율성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다.5)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에서 정치와 경제가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가질 수 없고 직접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은 1)에서 언급하였듯이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의 형성, 조성자가 다름 아닌 노동자국가,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노동자계급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자본주의사회에서와는 달리 사회주의사회에서는 다양한 노동자국가형태가 존재할 수 없고 오직 노동자민주주의 형태의 노동자국가 형태만이 유일하게 존재할 수 있음을 함축한다. 즉, 노동자민주주의이외에는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에 조응하는 노동자국가형태는 존재할 수 없으며 관료독재형태의 국가와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의 결합은 관념에서나 존재할 수 있을 뿐 결코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만약 관료독재가 출현한다면 이는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와 공존할 수 없으며 관료독재가 타도되지 않는 한,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는 관료독재에 의한 변질을 피할 수 없다. 이 점을 아래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2. 부르주아국가의 형태변화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본질적인 변화를 야기하지 않은 것과 대조적으로, 사회주의혁명으로 수립된 노동자민주주의가 변질되면 노동자국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고 관료독재로 변질된다. 이는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의 변질을 필연적으로 야기한다.

     

    프랑스혁명에서 공화제, 공포정치에 이어 테르미도르, 총재정부, 통령정부, 제정, 왕정복고가 뒤를 이었지만 일련의 반동화는 심지어 왕정복고조차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전을 되돌리지 못하였다. 다양한 부르주아국가형태가 교체되고 심지어 봉건적 국가형태조차 출현하였지만 이것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봉건적 생산관계로의 역진을 야기하지는 못하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회주의혁명의 경우 혁명으로 출현한 노동자민주주의가 변질될 경우 관료독재가 출현하여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의 변질을 초래하고, 관료독재가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혁명에 의해 타도되지 않을 경우 종국에는 자본주의로의 회귀, 역사의 역진을 초래한다. 비록 그 진행이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졌지만 소련이 1990년대 초반 자본주의로 복귀한 것은 이를 입증해주었다.

    이는 노동자민주주의가 변질되면서 노동자국가는 노동자국가와는 그 질이 완전히 다른 관료독재로 변질되고 이러한 국가의 변질이 국가와 직접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생산관계의 변질6)조차 초래하고, 이 변질이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혁명에 의한, 관료독재의 타도에 의해 저지되지 않고 지속될 경우 관료 들 중 일부의 전변에 의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의 회귀가 야기되기 때문이다. 부르주아혁명의 반동화가 결코 봉건적 생산관계로의 회귀를 가져오지 못하지만 사회주의혁명의 반동화는 종국에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의 회귀조차 야기한다는 이 차이점은 부르주아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이 갖는 또 다른 차이점이다. 이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과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로의 이행이 각각 특유의 법칙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 사회주의혁명과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전에서 노동자국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그 역진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은 국가가 한다. 즉, 노동자국가의 변질이 종국에는 자본주의로의 회귀조차 야기하는 것이다.

    트로츠키의 치명적인 오류는 그가 노동자민주주의의 변질이 노동자국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한 형태(노동자민주주의)에서 또 다른 형태(관료독재)로의 교체에 불과한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이것이 토대에는 아무런 본질적 변질을 야기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한 데에 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스탈린 지배는 혁명 초기의 소비에트 지배와는 전혀 다르다. 한 정권의 다른 정권으로의 대체는 한 번의 타격이 아니라, 일련의 수단들을 통해서, 프롤레타리아트 전위에 대항하여 관료에 의해 수행되는 일련의 소규모 내전들을 통해서 발생한다. 최종적인 역사적 분석에 따르면, 소비에트 민주주의는 사회적 모순들의 압력에 의해 폭발했다. 사회적 모순들을 활용하여, 관료는 대중조직들의 손에 있던 권력을 찬탈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관료의 독재 그리고 심지어 스탈린 일인 독재에 관하여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권력은 오로지 관료 독재의 사회적 내용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 창출된 생산관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가능했고,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관료 독재라는 형태로 즉, 왜곡되었지만 의심할 여지도 없는 형태로 실현되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트로츠키, 1935, 「노동자국가, 테르미도르 그리고 보나파르티즘」, IBT 홈페이지에 게재된 한글번역본에서 인용)

     

    이 구절에서 확인되는 트로츠키의 판단은 노동자민주주의가 변질되어 관료독재가 출현하였는데 이는 왜곡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한 형태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 창출된 생산관계는 본질적으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트로츠키는 사회주의혁명과 부르주아혁명의 근본적 차이, 사회주의사회형성과 자본주의사회형성의 근본적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사회주의사회에서 정치와 경제, 국가와 토대를 자본주의에서와 같이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갖는 것으로 관념적으로 분리시키고 한 측면의 변질(정치, 국가)에도 불구하고 다른 측면(경제, 토대)의 변질이 야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부르주아혁명에서의 다양한 부르주아국가형태의 존재가 사회주의혁명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는 오류에 빠진 것이다.7)

    그리고 트로츠키가 이러한 오류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한 것은 그의 인식틀의 한계에도 원인이 있지만 그가 10월 사회주의혁명 이후 일관되게 노동자민주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투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노동조합의 국가화를 주장했던 것에서 보이듯 그 자신이 노동자민주주의를 왜곡하는 입장에조차 섰었던 것도 크게 작용하였다. 그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유지하는 데 쏟은 강한 문제의식과 현격하게 차이 나게 노동자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은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위의 글을 썼던 1935년이면 노동자민주주의는 완전히 실종된 상태였다. 이 시점에서도 그는 여전히 프롤레타리아트독재가 존재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었다.

     

     

    3. 부르주아혁명의 사회주의혁명에의 잘못된 유추는 사태를 과학적으로 해명하기보다 사태인식을 오히려 더 혼란스럽게 한다.

     

    부르주아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의 차이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할 경우, 이처럼 실천 상 중대한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정은 부르주아혁명을 유추하여 사회주의혁명을 바라볼 때 더욱 악화된다. 이 경우 유추는 사물의 인식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애를 조성한다. 트로츠키를 포함하여 스탈린분파에 대항했던 많은 소련 공산주의자들이 테르미도르, 보나파르티즘을 러시아 혁명에 적용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은 20년대 관료주의의 급속한 강화와 노동자민주주의의 후퇴, 우경화, 국제주의의 후퇴 등을 과도기사회의 특유한 특성에 맞추어 분석해내지 못하고 프랑스혁명의 경험을 유추하여 해석하려 하였다. 트로츠키가 「노동자국가, 테르미도르 그리고 보나파르티즘」에서 언급하였듯이 20년대 사회주의혁명의 변질에 대해 스미르노프 등의 “민주주의적 집중주의(democratic centralism)” 그룹은 소련에서 테르미도르8)가 이미 실현된 사실이라고 주장했고, 이와 달리 트로츠키 등은 “비록 이중권력의 요소들이 의심의 여지없이 나라 안에서 성장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요소들로부터 부르주아 헤게모니로의 이행은 반혁명적 전복이 없이는 발생할 수 없다. 관료가 이미 네프맨, 쿨락과 연결되어 있었으나, 관료의 주요한 뿌리들은 여전히 노동자 계급 속으로 뻗어 있다. 좌익반대파에 대항한 투쟁에서 관료는 의심의 여지없이 네프맨과 쿨락이라는 무거운 꼬리를 자신의 뒤에 끌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에 이 꼬리는 머리, 다시 말하면 지배 관료를 강타할 것이다. 관료 대오의 내부의 새로운 분열은 필연적이다. 반혁명적 전복의 직접적 위험에 직면하여 중앙파 관료의 기본적인 핵심부위는 성장하는 농촌 부르주아지에 대항하기 위해 노동자들에 의지하게 될 것이다. 싸움의 결과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10월 혁명을 매장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좌익반대파의 붕괴가 “테르미도르”를 촉진할 것이다.”라는 이유로 테르미도르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략 10년 후 뒤늦게 트로츠키는 원래 프랑스혁명에서의 테르미도르반동은 부르주아분파 중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의 권력이동이었을 뿐 봉건적 소유를 재건하려는 시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의미에서 소련에서 1924년에 좌익반대파의 분쇄로 혁명적 전위에게서 관료와 노동계급 상층부의, 보다 보수적인 인자들의 수중으로 권력이 옮겨졌다는 점에서 소비에트판 테르미도르가 시작되었다고 입장을 바꾸었다. 물론 그는 당시 20년대에 테르미도르로 규정하지 않았지만 주장의 내용은 올바른 것이었다는 말을 더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가 이렇게 입장을 1935년에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에 의하면 소련에서 이미 보나파르티즘이 출현한 것은 분명했고, 그렇다면 부르주아혁명에서 테르미도르가 보나파르티즘 이전에 출현했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소련판 테르미도르를 설정하지 않으면 보나파르티즘 출현에 대한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떻든 20년대 유추에 의한 소련판 테르미도르 논쟁은 뒤늦게 이를 수정해야 했을 만큼 사태의 본질을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혼란을 부추겼다.

    테르미도르 유추와 비슷하게 보나파르티즘 유추는 관료독재, 나아가 스탈린독재의 본질을 명확히 규명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보다 오히려 혼란을 야기했다. 우선 이 정치적 규정은 소련사회에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전에 당시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사회의 정치상황을 규정하는 데에도 적용되어9) 규정의 정치적 의미가 다의적이고 그만큼 주장하려는 핵심이 불분명하였다.

    그러나 이 보다 더 큰 결함은 이 규정이 관료독재, 스탈린 독재의 불안정성을 실제보다도 과장하고 이 독재가 소련사회 전반을 변질시킨 정도를 과소평가한 점이다.

    관료독재는 무한정 지속될 수 없고 노동자계급에 의해 타도되든가 자본주의로 회귀하든가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관료독재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나, 자신의 토대위에서 발전해가는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처럼 한 역사적 시기를 특징짓는 체제일 수 없다. 관료독재는 노동자계급에 의해 타도되어 다시 공산주의적 발전에 자리를 내놓거나, 자신을 지속하면서 종국에는 자본주의로 회귀하든가 할 수밖에 없는 체제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체제는 역사적으로 불안정한 체제이다. 역사는 이를 입증하였다. 그러나 트로츠키가 소련체제를 보나파르티즘으로 규정하였을 때 상정한 불안정성은 이런 의미의 불안정성과는 확연히 다른 높은 수준의 불안정성이었다.10) 그러나 관료독재, 스탈린독재의 실제의 불안정성은 이와는 달랐다. 관료독재는 트로츠키가 이 주장을 했던 시기 이후 60년 정도나 더 잔존하였다.

    또한 소련체제를 보나파르티즘으로 규정함으로써 트로츠키는 관료독재가 야기한 변질의 정도를 과소평가하였다. 그러나 관료독재는 노동자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를 변질시켰다. 그리고 국가와 생산관계에서 주인의 자리로부터 내몰린 노동자계급을 치밀하게 원자화시켜 노동자계급이 새로운 혁명으로 나서는 것을 봉쇄하였다. 트로츠키는 관료독재가 야기한 변질의 정도를 과소평가하여 소련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이 새로운 혁명을 실행하는 데서 봉착한 심각한 난관과 세계노동운동에서 스탈린주의 관료세력이 행사한 장악력을 과소평가하였다.

    부르주아혁명의 후퇴, 반동화는 결코 자본주의적 발전을 봉쇄할 수 없다. 이미 부르주아혁명으로 사회의 전면에 등장한 부르주아지는 반동화, 심지어 왕정복고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발전의 주체로서 무력화되지 않는다. 이와 달리 사회주의혁명이 후퇴, 반동화하는 경우 관료독재는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공산주의적 발전자체를 정치, 경제의 양면에서 왜곡, 억압하고 사회주의혁명의 본래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사회주의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을 철저히 원자화하고 무력화시키려고 끊임없이 책동한다. 관료독재는 치밀하게 짜인 감시, 통제망으로 노동자계급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데올로기 장치를 통해 노동자계급을 우민화하고 의식을 세뇌시켜 마비시키려고 책동한다.11) 관료독재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발전하지 못하도록 노동자계급의 모든 정치적 자유를 박탈한다. 그 결과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결집에는 수많은 난관이 형성된다. 소련에서 60년간 관료독재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12)

    이 점에서 부르주아 혁명의 후퇴, 반동화와 비교하여 사회주의혁명의 후퇴, 반동화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며, 트로츠키의 보나파르티즘 유추는 이 점을 철저히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였다.

     

     

    4. 트로츠키의 역설

     

    트로츠키는 소련체제를 내부에서 비판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스탈린이 트로츠키를 파시스트와 연합한 ‘계급의 적’의 수령으로 중상하고 암살자를 동원하여 그의 아들과 그를 살해한 것은 스탈린과 스탈린관료들이 그를 관료독재에 가장 반대하는 인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트로츠키는 뒤늦게 볼세비키에 합류하였지만 레닌의 지도아래, 10월 혁명과 내란시기 볼세비키당의 주요 지도자로서 활동하였으며, 레닌의 사후 스탈린주의와 가장 대표적으로 투쟁했던 인물이다. 이 점은 역사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런 트로츠키가 몇 가지 점에서 자신이 그토록 반대했던 스탈린주의독재체제의 변호론에 빠져들었다.

    그는 그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소련사회를 타락하였지만 여전히 노동자계급적 기초에 서있는 노동자국가로 규정하였으며 이를 옹호하는 과정에서 소련의 현실을 직시하는 데에서 한계와 오류를 드러냈고 몇 가지 점에서 그의 의도와는 달리 ‘객관적’으로 ‘스탈린주의체제의 불가피성’을 이론화하는 잘못을 범하였다.

    이것들은 앞에서 상술한 그의 사회주의혁명, 공산주의사회형성의 특유한 특성에 대한 불철저한 인식과 함께 오류이다.

     

    1) 소련의 후진성과 제국주의에 의한 포위는 관료독재를 불가피하게 하였는가?

     

    트로츠키는 이 물음에 대해 분명한 어조로 그렇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여러 글에서 관료독재의 출현을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용인하는 듯 한 주장을 하였다.

    그는 「배반당한 혁명」의 제3장 사회주의 체제와 국가, 4. “일반화된 결핍”과 경찰기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에 전적으로 기초하여 레닌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국가와 혁명』이라는 주요한 저술을 완성하였고 볼셰비키당의 강령을 작성하였다. 그러나 앞에서 이미 말했듯이 그는 러시아의 경제적 후진성과 고립성으로부터 도출되는 국가의 성격과 관련하여 모든 필요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였다. 당강령은 관료주의의 부활을 대중의 행정과업에 대한 익숙치 못함과 전쟁으로 인한 난관의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관료주의적 왜곡”을 극복하기 위해서 단순히 정치적인 조치들만을 처방으로 제시했을 뿐이었다. 즉 전권을 가진 모든 공직자의 선거와 소환이 언제나 가능해야 하며, 이들의 물질적 특권이 철폐되어야 하며, 대중이 국가기구를 적극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등이 이러한 정치적 조치들의 내용이었다. 이렇게 하다 보면 관료는 높으신 양반으로부터 단순하면서도 일시적인 기술자로 전락할 것이며 국가는 서서히 그리고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현실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당의 강령이 이렇듯이 임박한 난관을 명백하게 과소평가한 이유는 강령이 온전히 국제적 전망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국제적 전망은 오랜 기간 실현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조성되었던 유럽의 혁명적 위기는 유럽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를 가져다주지 못하였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부르주아지를 구출하였다. 레닌과 그의 동료들에게 “숨쉴 틈”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던 (혁명고립의) 기간이 한 역사적 시대의 길이까지 연장되었다.”(이상은 「배반당한 혁명」에서 인용)

     

    그 결과 소련은 난관에 봉착했고 결핍이 일반화되어 “소비재가 품귀를 이루고 이로 인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 의해 소비재의 분배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경찰관이 탄생했다. 이 경찰관이 곧 관료집단이다. 외부로부터의 적대적인 압력은 이 경찰관에게 나라의 “파수꾼” 역할을 맡을 것을 강요하고 있다. 이로서 관료집단은 전권을 행사하며 나라의 재화를 이중적으로 약탈하고 있다.”(트로츠키, 1939, 「전쟁에 돌입한 소련」, IBT 홈페이지에 게재된 한글번역본에서 인용)

     

    트로츠키의 논리전개구조의 골격을 추출하면 다음과 같다. 소련의 후진성과 혁명의 국제적 고립이 소련의 낮은 생산력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이로 인한 소비재의 품귀와 소비재쟁탈을 위한 만인의 투쟁은 다시 소비재의 분배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경찰을 탄생시켰고, 이 경찰이 관료집단이라는 것이다. 결국 “소련의 후진성과 제국주의국가들의 포위가 관료집단의 전횡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이다.”(트로츠키, 1939, 「전쟁에 돌입한 소련」, IBT 홈페이지에 게재된 한글번역본에서 인용)

    그런데 이러한 트로츠키의 논리전개구조라면 세계혁명이 오랜 기간 성공하지 못하고 지체된 조건에서 관료독재는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던 것이 된다.13)

    이 논리구조는 관료들에게는 관료독재의 더할 수 없는 존재근거논리를 제공해준다. 세계혁명이 성공하지 못한 조건에서 트로츠키도 관료독재 외에 대안이 없었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 아닌가? 트로츠키조차 소련의 조건에서 노동자민주주의가 당장은 실현불가능하였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 아닌가?

    결국 트로츠키는 반관료독재투쟁을 주장하면서도 이 투쟁의 확고한 사상적, 이론적 기초를 확립하는 데에서 실패했다. 투쟁의 힘은 우선적으로 확고한 투쟁근거에서 나오는 데 트로츠키의 반관료독재투쟁은 그러하지 못하였다. 그는 외관상의 관료독재에 대한 혁명적인 태도와 달리 스탈린관료독재에 용인적인 태도를 보였다.

     

    2) 전형적인 경제주의적 사회주의관

     

    사회주의 혁명은 앞서 언급하였듯이 자연발생적인 부르주아 혁명과 비교하여 의식적인 혁명이다.14) 여기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주체인 노동자계급의 의식적인 요소이다.15) 또한 사회주의혁명은 주체인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운동이다. 프롤레타리아독재, 노동자민주주의가 사회주의혁명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생산력의 발전,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매우 중요한 과제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모든 것은 주체의 발전과 고양과 결합될 때에만 온전한 해방적 성격을 가질 수 있다. 때문에 소련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에서 생산력의 발전,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그 자체로서 노동자국가를 판별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트로츠키가 이 두 기준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집요하게 노동자국가 판별의 기준으로 설정한 것은 그의 사회주의관이 제2인터내셔날 이래 만연된 경제주의와 철저히 단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 점 역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스탈린주의적 관료독재에 대한 명확한 반대전선을 치지 못하고 이의 변호론에 빠져들게 한 측면이다.

    그는 타락한 노동자국가론을 옹호하면서 강령과 현실, 당위와 현실을 대립시키며 소련의 노동자국가적 성격을 부정하는 사회주의자들을 강령적 기준에서, 당위적 기준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속물주의에 빠진 자로 매도하였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트로츠키의 기회주의적 태도이다. 그는 사회주의강령과 현실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사회주의강령의 관점에서 혁명적으로 해결하려는 대신, 사회주의강령을 당위로 간주하고 사회주의강령과 현실을 절충하려 하였다. 파리콤뮨과 소비에트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작성된 노동자국가강령을 하나의 당위정도로 바라보는 사회주의자는 기회주의적일 뿐만 아니라 현실의 어려움 앞에서 절충을 시도하는 속물주의자이다. 그래서 그는 노동자민주주의가 완전히 실종된 193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조차 당시의 관료독재를 프롤레타리아독재의 한 형태로 규정하는 오류에 빠져버린 것이다.

     

     

    맺으며 

     

    이글은 향후 본격적인 강령토론을 염두에 두고 강령토론이 풍부하고 깊이 있게 되도록 할 목적의 예비보충문건으로 작성되었다.

    후대의 사회주의자들은 선대의 사회주의자들로부터 배우고 또 그 한계와 오류를 극복할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갖는다. 후대의 사회주의자들은 선대의 사회주의자들의 치열한 고민과 실천을 추체험하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역사적 제약을 극복해야 할 책임이 있다. 당대에는 불명료했던 것이 역사적 경험이 전면화 되면서 보다 명료해지는데 후대의 사회주의자들은 이를 일반화할 의무가 있다. 이렇게 해야만 사회주의노동운동은 발전해갈 수 있다.

    나는 강령토론의 풍부화를 위해 사회주의자들이 이미 역사적 경험으로 존재하는 부르주아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의 차이를 분명한 형태로 밝히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회주의혁명은 부르주아혁명과 달리 의식적인 혁명이며 계급지배, 계급자체의 폐지를 목표로 하는 전면적인 해방운동이다. 이러한 전면적인 해방운동에서 공산주의적 생산관계, 공산주의사회의 형성과 구성이 갖는 특성을 잘 인식하는 것이 실천과제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중요하다. 노동자민주주의는 사회주의혁명운동에서 여러 병렬적 과제 중 하나인 과제가 아니다. 노동자민주주의는 공산주의적 생산관계, 공산주의사회의 형성에서 핵심고리이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사상의 핵심요체가 노동자민주주의이다. 부르주아혁명의 경험을 잘못 유추하여 의식적 요소, 주체적 요소의 결정적 역할을 잘못 이해하고 협소한 경제주의적 사회주의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치명적인 오류를 야기하며 사회주의노동운동은 이 점에서 이미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트로츠키는 사회주의혁명을 배신한 스탈린과 스탈린분파에 맞서 싸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트로츠키조차도 노동자민주주의의 변질이 야기하는, 노동자국가의 파괴와 관료독재의 등장, 이에 따른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의 변질의 전모와 의의를 정확히 밝혀내지 못하였다. 이 글은 트로츠키가 돌파하지 못한 한계와 오류를 명확히 드러내어 현재의 철저한 교훈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트로츠키의 오류는 단순한 과거의 오류로 머물고 있지 않다. 일부 사회주의자들은 그가 트로츠키주의자이건 아니건 트로츠키와 같은 오류를 되풀이 하고 있다. 이들에게 과거 역사의 경험은 아무런 교훈도 되지 못하고 있다. 이글이 이러한 낡고 나태한 의식을 깨는 사상적 무기가 되기를 바란다.

     

     

    [ 주 ]

     

    1) 이 항목에서 강령초안해설은 타락한 노동자국가론 뿐만 아니라, 소련사회를 여전히 사회주의국가로 규정하는 입장, 국가자본주의론, 관료집산주의론도 비판하고 있다. 이번 글의 내용은 여타비판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지만 논점을 보다 분명하게 하기 위해 주로 트로츠키의 타락한 노동자국가론비판에 집중하였음을 밝힌다.

    2) 이 글에서는 집중적으로 트로츠키의 사고와 실천이 갖는 한계와 오류를 밝히고 있는데 이는 트로츠키가 스탈린주의자들보다 더 많은 한계와 오류를 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 이유는 트로츠키가 사회주의자들이 넘어서야 할 사고전개의 극한지점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극복되어야 할 인식의 최대치를 보여주었고 그래서 이글의 가장 집중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3) 물론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생산력의 발전과 생산의 사회화가 있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이러한 전제가 없으면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는 실현될 수 없으며 이 경우 공산주의적 전망은 관념적, 공상적 기획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생산의 사회화는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의 전제일 뿐이지 그것이 곧바로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인 것은 아니다. 생산의 사회적 성격이 고도로 발전한 주식회사조차 노동자계급의 국가수립과 국유화 이전에는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로 전환되지 않는다.

    4) 엄밀한 용어를 사용하면 일반적으로 사회주의혁명 이후의 사회는 맑스가 고타강령초안비판에서 구분했듯이 과도기사회, 사회주의사회(공산주의의 낮은 단계), 공산주의사회(공산주의의 높은 단계)로 나뉜다. 그러나 사회주의혁명이후 사회주의사회의 건설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과도기사회까지도 광의의 사회주의사회에 포함시킬 수 있다.

    5)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과도기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우클라드인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에서 정치와 경제는 직접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노동자국가가 공산주의적 생산관계로 대체하려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정치(노동자국가)와 경제(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직접적 통일성이 존재할 수 없음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소생산자적인 생산관계에서도 그러하다.

    6) 주의할 것은 이 변질이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의 주장처럼 곧바로 국가‘자본주의’의 출현을 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산주의적 생산관계의 변질에서 자본주의로의 회귀까지에는 또 다른 여러 계기가 존재한다.

    7)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이론적으로 가장 잘 조응하는 부르주아국가형태는 부르주아민주주의공화제이다. 그러나 부르주아민주주의공화제는 자본주의 발전의 필수적인 조건이 아니며 부르주아민주주의공화제가 후퇴하더라도 결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이전 봉건단계로의 역진을 야기하지 않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노동자민주주의는 공산주의적 생산관계 형성의 필수적인 조건이며 이의 변질은 생산관계자체의 변질을 야기하고 이것이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사회주의혁명으로 저지되지 않을 경우 결국은 자본주의로의 회귀를 야기한다.

    8) 프랑스 혁명에서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를 무너뜨린 테르미도르 9일(테르미도르는 열의 달)의 쿠데타를 말한다.

    9) “너무도 넓게 이해되고 있는 보나파르티즘의 개념은 구체화가 필요하다. 지난 수년 동안 우리는 이 용어를, 프롤레타리아와 파시스트 진영 사이의 적대를 이용하면서 그리고 직접적으로 군-경찰 기구에 의존함으로써 “국가 통합”의 구세주로서 의회와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자본주의 정부들에 적용했었다.”(트로츠키, 1935, 「노동자국가, 테르미도르 그리고 보나파르티즘」, IBT 홈페이지에 게재된 한글번역본에서 인용)

    10) 그가 이 체제가 어느 정도의 기간동안 잔존할 것으로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여러 맥락으로 보아 그가 이 체제가 수십년간 잔존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은 것은 쉽게 추정할 수 있다.

    11) 관료독재는 자신들의 체제를 사회주의로 미화한다. 관료독재는 자신에 반대하는 행위는 사회주의를 배신하는 행위로 단죄한다. 관료독재는 ‘노동자가 주인인 사회주의사회’에서 노동조합이 ‘자신의 나라’에 대해 파업하는 것은 범죄 행위라고 주장한다. 무수한 거짓선전이 횡행하고 이것 없이는 존재가 불가능한 것이 관료독재의 특징이다.

    12) 생산수단의 국유화된 조건에서 노동자민주주의가 변질되면 관료독재가 출현하고 관료독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를 전체주의적 사회로 만들어 버린다. 노동자계급의 끝없는 원자화는 사회내부에서 사회를 변혁시켜갈 수 있는 능력, ‘자기정정력’자체를 무력화시킨다. 소련이 자기정정력을 갖지 못하는 사회로 전락한 근본 이유는 여기에 있다.

    13) 이러한 논리전개구조에서 관료독재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는 세계사회주의혁명밖에 없게 되는데 실제로 트로츠키는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

    14) 트로츠키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노동자국가, 테르미도르 그리고 보나파르티즘」에서 다음과 같은 말까지도 하고 있었다.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사회주의는 자동적으로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건설되는 것이다. 사회주의를 향한 진보는 사회주의를 갈망하는 혹은 사회주의를 갈망하도록 강제되는 국가권력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사회주의혁명의 의식적 성격이 갖는 의의를 부분적으로만 이해하였다. 그리고 실천에서 이를 극한지점까지 끌고 가지 못하였다. 사회주의혁명의 의식성에 대한 그의 인식은 부분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만큼 불철저했다.

    15) 물론 사회주의 혁명은 자본주의가 이룩해낸 성과, 생산력의 발전과 생산의 사회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회주의혁명에서 의식적 요소가 수행하는 역할의 강조가 주의주의적인 것으로 오해되고 왜곡되어서는 안된다.

     

      “

    부르주아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의 차이”에 대한 4 개의 댓글

    1. 성두현 동지는 소부르주아의 입장에서 악의적으로 트로츠키의 입장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트로츠키 자신은 이미 허다한 글들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소부르주아 분자들의 악의적 왜곡을 폭로한 바 있습니다.

      독일, 중국 등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실패하면서 스탈린 이하 관료집단이 소련 내에서 정권을 나름대로 공고하게 장악한 것은 현재 극소수 사회주의자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 현상을 트로츠키는 맑스주의의 입장에서 분석하면서 국제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 혁명을 주창했습니다. 이것의 조직적 표현이 제 4 인터내셔널이었습니다. 그런데 트로츠키가 스탈린체제를 용인했다니 이것은 대단한 의도적 왜곡 내지는 잘못된 해석입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왜곡 내지 잘못된 해석은 성 동지의 독창성을 증명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국가자본주의를 주장하는 다함께부터 시작하여 사노련, 사노신 등등 온갖 소부르주아 성향의 조직들이 이미 이런 주장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미 패망한 “현실사회주의권”과 현재의 중국, 북한, 쿠바, 월남 등이 (어떤 수식이 붙든) 노동자국가인가 아니면 자본주의 체제인가는 현재 운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맑스주의 세계운동권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즉 강령의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것은 러시아혁명의 시작과 끝을 올바로 이해하고 이에 입각하여 실천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문제로 구체적으로 다가오면 이 문제는 북한을 어떤 체제로 볼 것이며 따라서 사회주의혁명가를 자처하는 분자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좀더 장기적으로 한국혁명 그리고 동아시아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중국에 대한 입장이 바로 이 점의 중요성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혁명적 사회주의노동자당을 건설하는 실천은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왔습니다. 각 조직들이 혁명 정당 또는 그룹임을 자처하든 않든 계급투쟁의 현실과 미래가 누가 진정으로 혁명적인지를 입증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성 동지는 앞장 서서 혁명 정당 건설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허세를 버리고 떳떳하게 강령을 제시하는 그리고 이에 입각하여 투쟁하는 조직부터 제대로 꾸리기 바랍니다. 여태까지 동지는 특히 위에서 얘기된 문제들에 대해서 명확한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지 않았던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2. 노준호씨의 댓글에 대한 단상

      1. 사회주의자들 수준이 이정도인가?

      노준호씨의 글을 보면 답답한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어떻게 된 게, 사회주의자들은 제대로 된 비판을 하기는커녕 변죽이나 올리기 바쁘고 자신의 교조를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이제는 현실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접근법, 현실규정에 대한 유물론적인 태도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충실하길 바라고,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비판대상에 대해서 최소한 기본적인 정보는 숙지하고 글을 써주기를 바라는 심정뿐이다.

      노준호씨의 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 동지는 앞장 서서 혁명 정당 건설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허세를 버리고 떳떳하게 강령을 제시하는 그리고 이에 입각하여투쟁하는 조직부터 제대로 꾸리기 바랍니다. 여태까지 동지는 특히 위에서 얘기된 문제들에 대해서 명확한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지 않았던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말 글을 쓰는 사람의 기본적 예의가 되어 있는 글인가?
      해방연대(준)는 자신의 명의로 (가칭)한국사회주의노동자당 강령초안을 발표하였고, 이와 함께 강령초안의 내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명하는 강령초안 해설도 발표하였다. 그리고 해방연대(준)은 사회주의 정당건설 운동을 전면화하기 위해 제 사회주의 조직들에게 “공동이론지”와 “사회주의정치실천단”을 제안하였으며, 이것이 실현되지 않자 “역량의 부족 때문에 사회주의적 정치투쟁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현재 갖고 있는 역량을 규합하여 작더라도 사회주의적 정치투쟁을 당장 전개해야 하고 이렇게 해야만 사회주의역량이 확대되어 앞으로 실제로 대중적인 사회주의적 정치실천이 가능해진다”(해방 45호 기사)는 입장에서 자체적인 역량을 가동하여 “사회주의 정치실천의 날”을 지금까지 7차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모두 해방연대(준)의 홈페이지와 기관지 “해방”을 통해 조금만 시간을 들이면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허세를 버리고 떳떳하게 강령을 제시하는 그리고 이에 입각하여 투쟁하는 조직부터 제대로 꾸리기 바랍니다”라는 말을 아무 생각없이 할 수 있을까? 이 정도면 노준호씨는 기본도 되어 있지 않고, 상식도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현실사회주의”, “소련사회”의 성격에 대해서는 강령초안 해설에 그 입장을 분명하게 기술하였으며, 성두현 동지 자신이 사회주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서 다양한 글을 통해 의견표명을 하였다. 노준호씨는 도대체 이런 글들을 한번이라도 확인했는지 심각한 의심이 든다.

      다른 사람의 글을 비판하려면 최소한의 예의라는 게 있어야 한다. 비판에서 예의란 듣기 좋은 말만 쓰라는 것이 아니라 사실관계, 일차자료 등에 대해서 최소한 점검하고 숙지하여 그 내용에 기반을 두고 비판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맑스주의고 뭐고를 떠나서 기본적인 방법론이다. 그런데 노준호씨는 그런 것이 없다.

      2. 개념을 사용하려면 자신의 근거를 제시하고, 엄밀하게 사용해야

      노준호씨는 다짜고짜 “성두현 동지는 소부르주아의 입장에서 악의적으로 트로츠키의 입장을 왜곡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왜 이 입장이 소부르주아인지, 악의적인 것인지는 말하지를 않는다. 그리고 트로츠키는 자신의 글에서 이런 왜곡을 폭로한 바가 있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떤 글에서 어떻게 이런 왜곡을 폭로하였는지는 확인할 바가 없다.
      결국 노준호씨는 트로츠키를 비판하니까 기분이 나쁘고, 트로츠키를 비판하면 소부르주아의 입장이라는 것 이상의 내용을 말하지 않고 있다. 사실 수십년간 소부르주아적이라고 비판받아온 트로츠키주의를 생각해보면, 스스로가 당해온 박해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정말 비판다운 비판을 하자고 한다면 소부르주아니 악의적이니 하나마나한 용어로 남을 비판하는 것을 그만두고 자신의 근거를 분명히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3. 성두현 동지의 글의 핵심내용에 대한 비판을 보고 싶다.

      변죽이나 올리는 글, 하나마나한 글, 기본적인 팩트에도 충실하지 못한 조악한 글을 쓰는 데 힘쓰기 보다는 성두현 동지의 글의 핵심내용을 비판하는 것을 한번 보고 싶다.
      성두현동지의 글의 핵심내용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정치구조가 관료적으로 변질되었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경제적 관계, 생산관계의 변질까지 야기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료적으로 변질되었지만, 토대는 국가소유형태이기 때문에 여전히 노동자국가라는 트로츠키의 주장은 오류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두현 동지가 계속 강조하는 것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는 자본주의의 고유한 현상이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에서 사회주의 혁명이후의 사회를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사회주의사회에서도 정치와 경제가 분리된 것으로 파악하였으며, 생산력의 발전,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그 자체로서 노동자국가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바라보는 경제주의적 관점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노준호씨는 이에 대해서 비판다운 비판이 없다. 오히려 이런 주장은 “성 동지의 독창성을 증명하지 못”한다는 둥, “온갖 소부르주아 성향의 조직들이 이미 이런 주장을 해왔”다는 둥 신소리만 계속 해대고 있다. 정말 성두현 동지의 글의 자신의 독창성을 뽐내기 위해 쓴 글이라는 말이 제대로 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는가? 다른 조직들이 이런 주장을 해서 틀렸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기나 한 주장인가?

      4. 사회주의자다운 비판을 바란다.

      자본주의 체제를 타도하겠다고 하는 사회주의자라면 사회주의자다운 진지한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비판에 있어서 최소한의 예의와 기본을 갖추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노준호씨의 글은 사회주의자의 진지함을 찾아볼 수가 없다. 자신의 교조에 대한 앵무새같은 되뇌임, 트로츠키를 비판해서 기분나쁘다는 수준의 반응, 근거없고 엄밀하게 규정되지도 않는 개념들로 남을 비난하려는 태도, 기본적인 사실관계 조차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 불성실함, 상대방의 핵심을 자기 근거를 가지고 비판하기는커녕 신소리나 날리는 태도를 우리에게 보여줄 뿐이다.
      나는 노준호씨 정도의 글이 한국 사회주의자들의 수준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 여전히 강령토론의 사회주의자의 진지한 태도를 보여주는 비판글을 기대해보고자 한다.

    3. 황정규 동지에게

      우선 사회주의자의 최소한 예의와 진지함에 대하여:

      혁명적 맑스주의자에게 최소한의 예의와 진지함이란 “아무리 쓰디 써도 진실을 말하는 것”에 있다. 이 이외의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성두현 동지는 트로츠키가 스탈린주의를 용인했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확실히 악의적 왜곡이다. 나는 내가 보는 진실을 주장한 것 뿐이다. 맑스, 엥겔스, 레닌, 트로츠키 등은 자신들이 보기에 혁명적 맑스주의에 벗어난 주장에 대해서는 온갖 기분나쁜 말을 쓰면서 상대방을 몰아붙였다. 왜? 노동자해방을 자처하면서 실제로는 비혁명적 사고를 유포하는 자들에 대해 가차없는 투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황 동지의 기준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막 되먹은 인간들인가? 우리 운동권은 사회주의자하면 동지입네 친구입네 하면서 서로 친한 체 하는 것 같은데 이것은 소위 사회주의운동권을 무슨 동창회나 향우회쯤으로 보는 대단히 철저하지 못한 행동의 발로이다. 고향 선후배 학교 선후배하면 서로 꿈벅 죽는 행위는 후진적 행태에 불과하지 않은가? 황 동지는 학교나 고향 선배들의 사고에 대해서 제대로 비판의 날을 세우려는 시도를 해오고 있는가? 그렇다면 나의 글에 대해 예의를 따지지 말고 논점에 집중해서 평가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댓글 하나 간단히 올린 것을 진지한 논문으로 오해하면 안될 것이다. 길고도 진지한 논문을 써서 성 동지의 글을 비판할 것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할 문제이다. 다만 나는 성 동지가 너무나 “예의가 없고 진지하지 못한” 방식으로 트로츠키를 소위 비판한답시고 글을 쓴 것에 대해 나름의 반응을 보인 것 뿐이다.

      황 동지가 정말 진지한 사회주의자가 되려고 한다면 트로츠키가 소련과 스탈린주의에 대해 쓴 글들을 잘 읽어보고 성 동지의 글을 다시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같은 조직의 소위 “지도위원” 또는 학교 선배(?)가 쓴 글이라고 무조건 변호하는 것이 바로 진지하지 못한 자세가 아닐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충고한다면:

      “정치에는 고마움이란 없다.”는 격언이 있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고 은혜가 있어도 정작 노선에 입각한 그리고 각 계급의 이해에 입각한 정치투쟁, 계급투쟁이 벌어지면 이합집산이 이루어지며 이 과정에서 온갖 참혹한 행동들이 나타난다. 암살, 비방 등등. 결국 치열한 계급투쟁에서 올바르게 투쟁하려면 자신의 노선을 확실히 하고 이에 입각해서 개인적 정리나 이익을 내팽개쳐야 한다는 말이다. 레닌은 마르토프를 친형제같이 생각했지만 그를 소부르주아 노선을 주창한다고 비판한 후 그와 결별했다. 황 동지도 이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제발 예의같은 말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트로츠키는 자신의 노동자국가론을 반대하는 자들이 소부르주아적 감상주의, 정치적 속물주의, 비이성에 빠져 있다고 공박했는데 나는 그의 주장에 동의할 뿐이다.

    4. 1. 노준호는 독해능력이 그정도인가??

      논쟁의 예의는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팩트에 충실하는 것이다. 글을 제대로 읽어보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논쟁에 있어 예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사람의 글을 비판하려면 최소한의 예의라는 게 있어야 한다. 비판에서 예의란 듣기 좋은 말만 쓰라는 것이 아니라 사실관계, 일차자료 등에 대해서 최소한 점검하고 숙지하여 그 내용에 기반을 두고 비판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노준호씨의 독해능력은 갓 글을 배운 아이 수준밖에 안되서 내가 비판에 있어서 예의라고 한 것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의적으로 내키는데로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을 가공해서 그것을 비판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볼때에는 노준호씨의 특징은 남의 글을 별로 꼼꼼히 읽어보지도 않을 뿐더러, 기본적인 글쓰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강령초안을 제출한 조직에게 강령이나 제시하라고 하면 제대로된 정신이 박힌 사람이 할 말인가?

      해방연대는 사회주의 실천을 강화하기 위해서 소수라도 집중적인 실천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회주의 정치실천의 날”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강령초안을 제출하고 강령토론을 활성화시키려는 일련의 노력이 그것이다. 그런데 강령에 입각한 투쟁을 조직하라고 하면 그것은 제정신인 사람이 할 말인가? 백번 양보해 이러한 실천이 문제나 한계가 있다고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실천하고 있는데 아무 실천도 안하고 있다는 것은 무지에 빠진 사람이거나 다른 사회주의자들의 실천에 대해서 최소한의 관심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골방 사회주의자가 아닌 이상 어떻게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을까? 나는 노준표씨가 어떤 실천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다음 댓글에서는 사회주의 투쟁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준표씨의 실천에 대해서 소개받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2. 논리도 없고, 근거도 없고 트로츠키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나는 따른다는 식을 넘어선 주장이 노준호씨의 댓글에 있는가?

      노준호씨는 엄청난 학습을 했기 때문에 잘 알겠지만, 레닌은 국가론이나 제국주의론을 쓰기위한 사전작업으로 엄청난 연구노트를 남겼다. 맑스의 자본론에 나온 인용들은 모두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맑스가 일차자료를 꼼꼼하게 점검한 것들이었다.

      노준호씨에게 바라는 것은 최소한 자기 논리를 제시하라는 것이고 기본적인 사실과 자료들은 확인하고 글을 쓰라는 것이다.

      그런 태도도 없이, “나는 내가 보는 진실을 주장한 것 뿐이다”(그렇다! 그건 당신이 보는 진실일 뿐이다),”트로츠키는 자신의 노동자국가론을 반대하는 자들이 소부르주아적 감상주의, 정치적 속물주의, 비이성에 빠져 있다고 공박했는데 나는 그의 주장에 동의할 뿐이다”(그렇다! 당신이나 그의 주장에 동의할 뿐이다)라는 헛소리나 지껄이고 아무런 자기근거도 없다면 그것이 과학인가? 종교에 불과하지! 이런 상대주의적 관점이 노준호씨가 논쟁에서 도망치고 논리와 근거없는 주장을 할 수 있는 토대이다.

      트로츠키가 가라사대 논쟁은 이미 다 정리했다는 식의 접근을 지하에서 트로츠키가 듣는다면 어떤 심정일까? 참 이 치는 유물론과 변증법을 제대로 공부했구나 하고 말할까?

      3. 지연, 학연때문에 내가 성두현을 변호하고 있다는 사고야말고 가장 구역질나고 구태의연한 써클식 사고이다.

      마지막으로 논쟁을 하려면 가차없는 표현도 수반되지만, 노준호씨가 그만한 자질이 되는지 궁금하다. 남이 비판한 글을 보면 그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보다는 인신공격이나 하고 근거없는 헛소리나 늘어놓는 것이 사회주의자의 자질인지 궁금하다. 비판에 대해 비판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같은 조직의 소위 “지도위원” 또는 학교 선배(?)가 쓴 글이라고 무조건 변호하는” 것이라는 비난이나 늘어놓는 것이 사회주의자가 논쟁하는 태도인가?

      정치조직은 사상적 통일성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성두현의 글은 개인적으로 나온 글이지만, 그 중심내용은 해방연대의 오랜 이론적 고민 속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그리고 해방연대의 공식적 입장으로 표명된 입장이다. 해방연대 회원은 이에 대한 이론적 동의 속에서 활동한다. 이는 어느 정치조직이나 기본적인 운영원리이다. 그리고 사상투쟁 또한 개인의 이론적 영특함을 뽐내는 경연대회가 아나라, “조직적” 투쟁의 일환이다. 이 또한 조직활동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노준호는 이런 기본적 이치도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사상투쟁을 개인간의 이론적 경합수준에서 바라보고 다른 사람의 개입해서 한측을 옹호하면 학연, 지연때문에 그런 것으로 바라본다.

      여기서 확인되는 것은 노준호의 사고수준이다. 노준호 스스로가 얼마만큼 개인주의적 사고에 빠져 있는지, 그리고 학연, 지연에 얽매여 활동하는 방식에 얼마나 절어있는지를 여기서 알 수 있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의 활동 또한 자신의 협소한 시각으로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원래 “부처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사기꾼눈에는 사기꾼만 보이는 법”이다.

      4. 노준호씨, “타락한 노동자국가론”에 대해 본격적인 토론글을 써주십시오. 그리고 본격적으로 토론해봅시다.

      노준호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만 나는 성 동지가 너무나 “예의가 없고 진지하지 못한” 방식으로 트로츠키를 소위 비판한답시고 글을 쓴 것에 대해 나름의 반응을 보인 것 뿐이다.”

      댓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노준호 씨의 “그 나름의 반응”은 매우 논리박약에 유치한 방식이다. 그렇게 성두현 글의 예의가 없고 진지하지 못했다면 유치하게 대응하지 말고 사회주의자답게 정면 승부를 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강령토론의 공간은 토론을 원하는 모든 이에게 열려있다. 자신이 그렇게 올바르고, 성두현의 글에 문제가 있다면, 정식으로 논쟁글을 게재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전면적으로 논쟁해갔으면 한다. 그것이 서로의 주장을 확인하고 논의도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노준호씨의 본격적인 비판글을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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