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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강령을 토론하자!」 제 4호를 발간하며
「사회주의강령을 토론하자!」 제 4호가 다소 늦게 동지 여러분을 찾게 되었다. 4호 발간이 늦어지게 된 것은 우선 여러 가지 활동들이 겹쳐지면서 글을 기고할 동지들의 글 작성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4호가 늦어지게 된 더 큰 이유는 3호의 발간사에서 독자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3호 발간사에서는 “앞으로, 생태문제에 대한 더욱더 심화된 토론을 활성화할 뿐만 아니라, 여성문제에 대한 사회주의적 관점의 토론을 적극적으로 활성화할 계획임을”임을 밝혔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편집위원회는 4호에 여성문제에 관한 글을 싣기로 기획하고, 이미 편집위원회에서 진행하고 있던 여성문제에 대한 학습과 토론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여성 억압의 근본 원인을 정식화하는 데에서 당초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게 되고 편집위원들이 다른 일로 시간을 충분히 할애할 수 없어 불가피하게 4호의 발간 시점이 늦추어지게 되었다.
현재까지의 노력으로 여성 억압의 근본 원인을 정식화하는 데에서 편집위원회는 대강의 내용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진한 부분이 있어, 이와 관련된 본격적인 글은 다음호에 싣는 것으로 하고, 편집위원회는 현 수준에서라도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는 내용의 글을 논쟁적인 방식으로 4호에 싣기로 하였다.
이상진의 「여성문제, 계급문제에 대한 이원론적 접근 비판」은 여성문제에 대한 논쟁적 방식의 첫 번째 글이다. 이 글은 제목처럼 여성문제, 계급문제에 대해 이원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사회주의 여성주의자들은 사회주의운동이 여성문제를 사회주의 혁명이 이루어지면 모두 해결될 수 있다고 환원하였다고 비판하면서 여성운동의 독자성을 주장한다. 여성문제가 단순히 계급문제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이들의 비판의 표적이 되는 엥겔스조차 계급문제가 여성문제를 야기하였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엥겔스는 계급문제와 아울러 여성문제가 역사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주장했지, 계급문제에 의해 여성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주장한 적이 없다), 문제는 계급환원론을 비판한다고 하면서, 사회주의 여성주의자들이 계급문제와 여성문제를 이원적 구조로 보면서 양자를 병렬적으로 파악한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사회주의운동과 여성문제의 총체적이고 유기적인 결합이 아니라 둘 사이의 분리를 낳고 결국에는 급진 여성주의로 귀결되게 된다. 이상진은 이 점을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상진의 글은 바로 앞에서 말했듯이 여성문제에 대한 사회주의 관점의 포괄적인 글이 아니라 특정 측면을 다루는 논쟁적 방식의 글이다. 여성문제에 대한 사회주의의 관점의 더욱 정식화된 글들은 다음 호부터 실을 예정이다.
두 번째 글인 성두현의 글, 「건설할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지도이념은 맑스주의이다」는 제목 그대로, 건설할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지도이념을 맑스주의로 규정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글은 당의 지도이념을 사회주의로 규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그 이유로서, 역사상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많은 조류가 있었지만 맑스주의를 제외하고 대부분 실제로 사회주의가 아니었고, 현재에도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많은 조류가 있지만 대부분 실제로 사회주의가 아닌 점을 들고 있다. 때문에, 진지하게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는 당을 건설하려 할 때, 사회주의자들은 당의 지도이념을 사회주의로 규정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당의 지도이념을 맑스주의로 규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글은 이러한 주장에 이어 곧바로 당의 지도이념을 맑스주의로 규정한다고 할 때 어떤 맑스주의를 상정하고 있는지를 세 가지 측면에서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현재, 당의 지도이념을 맑스주의로 규정하지 않으면서, 절충적이며, 기회주의적인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현실의 움직임을 비판하고 있다. 이 글은 사회주의노동운동의 역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온 맑스주의를 우회하는 사회주의주장은 허구적이며, 절충적이고 기회주의적임을 밝히고 이것이 어떻게 사회주의를 왜곡하고 노동자계급에게 혼란을 야기하는 지를 비판하고 있다.
세 번째로 실린 황정규의 「국가자본주의론의 고질적인 ‘추상적 도식주의’」는 소련 사회를 국가자본주의로 보는 국가자본주의론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는 글이다. 이미 창간준비호의 강령초안 해설에서는 국가자본주의론의 근본적 한계를 비판한 바 있으며. 2호의 글에서는 황정규가 토니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론을 검토하는 방식으로 국가자본주의론이 어떻게 추상적 도식주의라는 사고방식으로 소련현실을 바라보면서 오류와 한계를 낳게 되는지 검토하였다.
황정규의 글은 국가자본주의론 내에는 다종다양한 국가자본주의론들이 존재하지만, 모두 공통되게 추상적 도식주의에 빠져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 글은 추상적 도식주의가 국가자본주의론에서 얼마나 고질적인지 확인해보기 위해 레스닉과 울프의 국가자본주의론을 하나의 사례로 검토하였다. 이 글이 비판하는 레스닉과 울프의 국가자본주의론은 맑스주의적 방법론을 이탈하는 점에서 토니 클리프를 완전히 능가한다. 이 글을 읽다보면,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이들이 어느 정도로, 개념을 자의적으로 만들어내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번 호에서 이들의 주장을 검토한 것은 이들의 논리가 다른 국가자본주의론보다 더 월등해서가 아니라 이들의 주장이 국가자본주의론의 추상적 도식주의가 어느 정도로까지 악화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글은 생태문제에 대한 글이다. 박남일의 글 「‘에코자본주의’의 허상과 생태적 대안 제시의 필요성」은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적 대응과정을 통해 자본주의가 생태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생태계의 위기를 새로운 이윤창출사업으로 삼는 부르주아지들과, 자본주의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결국에는 ‘착한 자본주의’를 주장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주류 환경론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박남일의 글 역시 생태위기가 자본주의의 결과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박남일은 글 마지막 부분에서 강령초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데, 강령초안의 내용과 다소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강령토론」편집위원회는 강령토론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지금보다 더 예리하게 강령토론의 쟁점들을 부각시킬 생각이다. 아울러, 소주제별 토론회 등을 통해, 강령토론의 다양한 소주제별 토론(소련사회성격, 여성문제, 생태문제)의 활성화를 꾀할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한다.
2010. 3. 2
「사회주의강령을 토론하자!」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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