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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위기의 주범인 자본주의
황 정 규 (「사회주의강령을 토론하자!」 편집위원회 편집부장)
「사회주의강령을 토론하자!」 3호에서는 생태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이는 생태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는 상황에 비해 이 생태문제를 사회주의자들이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토론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제 3호의 글에서는 생태문제에 대한 맑스주의적 관점이 발전해오는 방식으로 글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생태문제에 대한 맑스주의적 관점이 발전해오는 과정을 평가하면서, 소위 생태사회주의, 생태주의적 맑스주의 등이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생태문제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였으며, 더구나 이들은 맑스주의가 생태문제를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사회주의를 포기하는 결과를 낳았음을 강조하였다. 또한 사회주의자가 생태문제에 대해서 올바른 관점을 취하기 위해서는 계급문제, 생태문제 등을 별개로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총체성 속에서 생태문제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이 글은 현재의 생태문제는 인간과 자연간의 물질대사 관계에 균열이 발생하여 일어난 것으로, 이 물질대사 관계는 역사적으로 인간사회가 취해왔던 생산관계에 따라 특유의 형태가 존재하는데,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공존을 파괴하는 물질대사 관계를 낳았음을 강조하였다. 제 3호의 글은 이 물질대사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자본주의는 그 본질적 속성 상 이윤(잉여가치)의 추구를 목적으로 하며, 이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은 생산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이윤 획득 과정은 그 한계가 없는 무제한적 과정이다. 또한 자본주의는 이윤의 획득을 위해, 생산규모를 항구적으로 확대 시키려는 경향을 지닌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과의 물질대사 관계도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 이윤을 위해 자연에 대한 약탈을 가속화하는 과정으로 갈 수밖에 없다.”(황정규, “생태문제에 대한 맑스주의적 관점”, 「사회주의강령을 토론하자!」 3호)
간단히 말해 현재 인류가 직면한 생태위기는 인간활동 자체의 결과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 3호의 글은 맑스주의적 생태론을 전체적으로 제시하려고 하는 목적 때문에, 자본주의가 어떻게 생태문제를 야기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못하였다. 이 글은 바로 제 3호의 글의 주제 중 하나였던, 자본주의가 생태문제를 낳는 주범임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전체글 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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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자본주의’의 허상과 생태적 대안 제시의 필요성
박 남 일 (노동해방실천연대(준) 회원)
그간 남한 사회의 노동자계급과 변혁운동 진영은 지구적 위기인 생태 문제에 대한 의제를 선점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생태운동을 일부 시민운동가들의 전유물로 보면서 방치하거나, 애써 외면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당면한 계급적 의제에 힘겹게 매달리느라 생태환경문제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논의조차 갖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이 생태 문제를 피해가는 변명이 되지는 못한다. 생태위기는 전 인류적이고 전 계급적인 문제인 동시에, 그로 인한 고통과 피해가 노동자계급에게 심각하게 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터에 본지 3호에 실린 황정규 동지의 글 ‘생태문제에 대한 맑스주의적 관점’은 몇 가지 면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우선 생태 문제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논의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소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획기적이었다. 또 마르크스주의에 씌워진 ‘반(反)생태적’이라는 누명이 근거 없는 비난일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야말로 생태계 위기라는 지구적 문제를 올바르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시도는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의 여정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생태관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지피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 성과를 밑절미로 하여 이 글에서는 부르주아 세력이 생태문제에 대하여 대응해온 과정과 현황을 거칠게나마 짚어보고자 한다. 세계의 부르주아계급과 제국주의 세력은 생태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또 그렇게 의제를 선점한 생태문제의 본질을 어떻게 왜곡시켜왔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생태위기 해법의 반면교사와 더불어,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생태 강령에 대한 배경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전체글 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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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을 말하는 생태학(The ecology of Destruction)
존 벨라미 포스터 (「먼슬리 리뷰」 편집자)
이 글은 포스터가 편집자로 있는 “먼슬리 리뷰” 2007년 2월호에 실렸다. 포스터는 최근 맑스주의적 관점의 생태론에 대해 진전된 성과물들을 생산하고 있는데, 독자들이 그 내용을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번역 게재한다.
본문은 「http://www.monthlyreview.org/0207jbf.ht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질로 폰테코르보의 1969년 영화 ‘Burn!’을1) 언급하는 것으로 여기서 내가 ’파멸을 말하는 생태학‘이라고 부르는 것에 관한 나의 분석을 시작하고자 한다. 폰테코르보의 웅장한 영화는 우리가 사는 시대를 염두에 둔 정치적, 생태적 비유로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19세기 초반 ’Burn’이라 불리는 상상 속에 존재하는 카리브 해의 한 섬을 배경으로 설정하였다. ‘Burn’은 세계 경제 안에서 환금작물인 설탕 수출에 의지하며 설탕 생산 단작을 하는 포르투갈 지배 하의 노예 섬이다. 오프닝 신은 우리에게 처음에 포르투갈 식민지배자들이 토착민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 섬 전체에 불을 놓아 이곳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나서 그 이후에 노예들이 새로 경작된 사탕수수를 베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수입되었다는 사실에서, 섬이 그 이름을 얻었다는 정보를 알게 해준다. 전체글 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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